처음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스타트렉의 공식 신작이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미국 TV쇼가 거대해지고 화려해진 시대의 첫 스타트렉이니, 과거 시리즈처럼 느긋하게 진행되긴 힘들다. ‘디스커버리’의 첫 시즌은 유서 깊은 세계관 안에서 벌어지는 우주전쟁 스릴러인 동시에 다양한 모험이 몰아치는 블록버스터 TV쇼에 가깝다. 비록 작품의 배경은 커크와 스팍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오리지널 시리즈(TOS)의 10년 전을 다루고 있지만, 프리퀄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독자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첫 시즌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감동적인 팬서비스를 통해 TOS와의 접점을 확 넓히더니, 두 번째 시즌을 통해 스타트렉만의 고유한 매력을 되살려 냈다. 시즌2 초반 에피소드들은 대단원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매 회마다 완결성이 있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이 황홀하다. 스타트렉의 오랜 윤리적 화두인 프라임 디렉티브(이번 작품에서는 ‘제너럴 오더 원’이라고만 불린다)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기도 하고, 주요 캐릭터인 사루와 그 종족 캘피언이 겪는 사건을 통해 존재론적인 질문도 시도한다. 그럴 때 스타트렉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넘어 하드SF에 가까운 사고실험을 하고 현실세계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루는 특유의 가치를 되찾는다.
시즌 2는 팬서비스와 새 세대의 오락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주인공 마이클이 스팍의 수양누나라는 점부터 팬서비스로 점철된 작품이 될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과물이 기대 이상이다. 스팍과 파이크 선장을 비롯해 기존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여럿 재등장하고 재해석된다. 특히 8화는 기가 막히다. 8화는 탈로스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데, 탈로스는 1965년 방영된 최초의 스타트렉 파일럿 에피소드의 배경이었다. 배경만 똑같은 게 아니라 내용이 이어진다. 즉 44년 만에 만들어진 최초 파일럿의 속편에 해당한다! 그래서 8화의 ‘지난 이야기’는 앞선 7화의 영상이 아니라, 44년 전 파일럿 에피소드의 영상을 짜집기해서 만들었다(레너드 니모이의 스팍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즌2 막바지에 가면, 파이크 선장은 (TOS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던) 자신의 비극적인 미래를 알게 됐으면서도 임무를 다하는 모습으로 큰 감동을 준다. 시즌 2를 거쳐 점차 성장한 스팍이 막바지에 이르러 사람들이 아는 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역시 짜릿하다. 마이클이 스팍에게 건네는 결정적인 조언이라는 것이 사실상 커크를 찾아 우정을 쌓으라는 내용이라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처음 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던 건 주연으로 더그 존스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진정한 페르소나이자, 특수분장의 팬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배우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어인, ‘판의 미로’의 판과 손바닥눈알괴물, ‘헬보이’ 시리즈의 에이브사피언+죽음의천사+체임벌린 등등. 190cm 넘는 비쩍 마른 몸과 섬세한 몸놀림으로 델토로의 상상을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들어 왔다.
새로운 외계인 캐릭터 사루는 더그 존스만을 위한 역할이라 할 만한데, 머리와 손에 라텍스 분장을 한데다 발굽이 있는 종족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한 특수 신발(촬영 내내 발끝으로 선 채 골반을 앞으로 내밀어 균형을 잡는다고 한다)까지 신어서 키가 2m도 넘는다. 그 큰 키로 다른 배우들을 내려다보면서 우아하고 늘 겁먹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리즈를 즐길 가치가 있다. 작품 특성상 디스커버리호의 복도를 걸어가며 대사를 칠 때가 많은데, 존스는 캘피언 특유의 손동작과 걸음걸이도 만들었다. 팔을 등 뒤로 휘적휘적 늘어뜨린 모습은 꼭 유영하는 해파리 같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액션 장면들인데 넷플릭스 특유의 흥청망청 돈 낭비하는 제작방식 덕분인지 우주함대의 대결이 엄청난 규모로 등장한다. 그 규모와 컴퓨터그래픽의 수준은 TV쇼를 넘어 영화까지 포함해도 역대 모든 스페이스오페라 중 가장 화려하다. 16년 전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우주전을 보고 감탄했던 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 그러면서도 너무 현대적인 느낌으로 업데이트에만 골몰한 게 아니라, 페이저가 발사될 때의 시각효과 등 여러 측면에서 1960년대 스타트렉의 설정을 잘 물려받았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즐길 만하고, 양자경 누님이 핵심 캐릭터로 등장해 특유의 다리찢기 발차기를 구사하는 모습 역시 반가운 요소다. 시즌 2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디스커버리호의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힘을 모아 (낡은 남성 캐릭터인) 파이크를 구해주는 액션 시퀀스가 상당히 강조돼 있는데, 이 신도 즐길 만했다. 1960년대부터 다양성에 신경 쓴 시리즈였던 스타트렉은 2019년에 이르러 더 다양한 성적지향과 출신성분을 반영하는 멋진 시리즈가 되었다. 또한 파일럿 에피소드와 TOS 시절 파이크 선장의 부선장(넘버원)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을 뿐 큰 비중을 갖진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등장한 넘버원은 레베카 롬진(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미스틱)이 맡아 엄청나게 카리스마 있는 여성 지휘관의 모습으로 재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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