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티-이탈리아 여행] 로마로 가는 길에 만난 토티의 동료 왼쪽 서랍


내 책 <프란체스코 토티 : 로마인 이야기>(이하 <토티>)의 집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올해 2월, 내게 유럽 출장 기회가 생겼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거치는 출장 뒤에 휴가를 며칠 붙여 <토티>를 쓰기 위한 답사를 하기로 했다. 회사의 양해를 받은 뒤 허겁지겁 답사 준비를 시작했다. 일찌감치 인터뷰 신청을 했다면 토티 본인, 혹은 토티를 잘 아는 로마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시간이 없었다. 로마 구단과 접촉하는 건 취재 신청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취재 신청 과정을 돌이켜보면 거의 코미디와 같았다. 욕심이 생긴 나는 금요일 피오렌티나(vs 유벤투스), 토요일 나폴리(vs 라치오), 일요일 로마(vs 베네벤토) 홈 경기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중남부 경기 일정을 발견했다. 경기 상대도 대부분 화려했다. 급히 세 구단에 취재신청을 넣었다. 아무리 세리에A 입장권 구매가 쉽다지만 미리 기자석을 예약해놓고 간다면 현지에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경기를 볼 때마다 기사만 하나씩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단의 미디어 안내 문구에 따라 정해진 날짜, 정해진 서식에 맞춰 신청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취재가 거절당했을 경우 거절 통보를 해 준다고 명시돼 있었는데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심지어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피오렌티나만 뒤늦게 취재 허락을(격식에 맞는 이메일로) 해 줬을 뿐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이메일 계정을 바꿔가며 나폴리와 로마 측에 추가 메일을 보냈고, 메일을 확인해 달라는 메일을 또 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폴리와 로마 모두 매우 뒤늦게, 경기 전날 저녁에 취재를 허가한다는 통보를 해 줬다. 특히 나폴리의 답신은 가관이었다. 나는 격식에 맞는 영어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나폴리의 답신은 딱 두 단어 “OK, accreditation!” 뿐이었다. 정말로 느낌표까지 찍혀서 왔다. 나폴리 담당 직원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어로 신청하시면 경기 X일 전까지 답신해 드립니다’라고 써 있던 미디어 안내 문구는 개뻥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들 대충 신청 메일을 보낸 뒤 대충 들어가서 대충 취재하는 시스템인 것으로 짐작됐다. K리그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짧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느낀 '이래서 반도 국민성 비슷하다고 하는구나'의 첫 순간이었다.

여전히 취재 승인이 났는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파리를 떠나 로마로 향했다. 그날 파리에는 눈이 많이 왔다. 폭설이라고 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지만 뜻밖에도 파리의 대중 교통은 거의 마비 상태였다. 충분히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마비된 전철(공항철도?)을 골라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느리게 가는 전철에서 시간을 더 허비했다. 그래도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바쳤다. 

마침내 게이트 앞에 도착해 들어갈 시간이 되었는데, 이번엔 활주로 사정 때문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유럽인들은 ‘원래 포르투갈 저가 항공을 타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잡지를 펼쳐들었지만 나는 어느 게이트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괴상한 시스템에 어안이 벙벙했다. 출장 인생 9년차에 이만큼 당황스런 연착은 처음이었다. 나만큼 당황한 한국인을 한 명 만나 서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끝에 항공사 사이트 구석의 어느 메뉴로 들어가면 연착된 항공기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걸 찾아냈다.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탈리아에서 겨우 4박 5일만 머무를 수 있는 나로선 첫날 대부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크나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비극은 약간의 행운으로 바뀌었다. 내가 갑자기 생긴 일행과 모처럼 한국어를 쓰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까부터 묘하게 눈에 띈 남자가 근처에서 두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뿌리는 검지만 나머지는 금발인 단발머리를 귀 뒤로 대충 넘겼고, 느끼해지기 쉬운 벨벳 자켓을 몸에 딱 맞게 입은 남자였다. 그는 페데리코 발차레티였다. 발차레티는 내가 직접 취재한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의 주전 풀백이었고, 무엇보다 토티의 전 동료이자 현재 직장 동료(로마 디렉터)였다. 발차레티의 아내가 파리에서 일하는 발레리나라는 건 알고 있었다. 파리의 집에서 로마의 집으로 건너가는 길에 나와 마찬가지로 발이 묶인 것이다.

나는 발차레티에게 말을 붙이기로 했다. 기자로서, 축구인에게 팬심을 표현하는 건 금기시되는 행위다. 그러나 그 자리의 나는 취재가 아닌 휴가 중이었고, 파리에서 발차레티를 만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깎여나갈 위신도 없었다. 발차레티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그는 씩 웃으며 반겨 줬다.


그런데 기자가 아니라 팬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나니 행동거지도 팬처럼 되어버렸다. 발차레티는 영어도 그럭저럭 하는 편이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이것저것 캐물으며 책에 쓸 멘트 몇 마디라도 받아냈을 텐데, 그날은 어버버버 거리며 겨우 1분 정도 대화한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발차레티가 다시 아이들과 놀아줘야 할 시점이었다. 결국 내 손에 남은 건 자신의 모습이 엉망일 뿐 아니라, 발차레티의 고상한 외모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셀카 한 장이었다.

괜찮았다. 토티의 발자취를 느끼러 가는 길에 토티의 동료이자 친구인 사내를 만났다는 건 묘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발차레티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향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알프스와 지중해는 벌써 환상적이었다. 로마에서 한 일이라고는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것이 고작이었지만, 대충 아무데나 들어간 숙소 근처(테르미니 역 근처)의 작은 식당은 ‘짜고 맛있는 파스타’ ‘한국에서라면 이렇게 단촐한 재료만 넣고 팔 리 없지만 막상 먹어보면 버섯 향이 만족스런 피자’ ‘커피를 달라고 하면 당연히 나오는 에스프레소’ ‘여유롭게 가곡을 부르며 서빙하는 뚱뚱한 대머리 직원’ 등 이탈리아 식당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를 모두 충족시켰다. 그렇게 첫 날이 흘러갔다. 이튿날은 로마 관광을 약간, 토티에 대한 답사를 약간 하기로 대충 계획을 짜고 잠이 들었다.


덧글

  • 타마 2018/10/05 09:00 # 답글

    어째서 음악밸리에...
  • redz 2018/10/05 10:14 #

    이제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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