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료타와 영화를 보는 내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일기(2016.07~ )

어느 부부가 갓난아기를 동반하고 영화를 관람하다가 극장 안에서 기저귀를 갈았다더라. 결혼 전이라면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그들의 마음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 육아의 고충 중 사소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것 하나가 ‘극장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씨네21을 정기구독하면서도 영화 외 기사를 골라 읽게 되는 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보고 싶은 IPTV로 출시됐을 때를 대비해 몇 개월 된 씨네21을 방 한 켠에 고이 모셔두기도 한다. 

때론 누군가의 작품 세계를 통째로 놓치는 기분이 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렇다. 뒤늦게 개봉한 <환상의 빛>을 포함해 지난 1년 동안 3편의 영화가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예전처럼 극장에 다녔다면 그중 두 편 정도는 챙겨봤을 것이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IPTV를 고르는 기준은 ‘자극적인 장면이 없을 것’ ‘실패할 위험이 적을 것’ 등이 있다. 김혜리 씨네21 기자가 라디오에서 추천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혼자 딸을 돌보게 된 저녁, 내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딸은 콧방귀도 뀌지 않은 채 블록만 쌓고 있었다. TV를 틀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자극적이지 않은 영상이 필요했다.

군더더기 없이 캐릭터가 소개되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갓난아기가 바뀐 걸 6년 만에 통보 받고 서로의 친자를 교환하게 된 두 가족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답게 케이타와 류세이를 맡은 두 아역의 연기가 가슴을 치는 동안, 나는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고 화면과 아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두 부부가 아이가 바뀐 걸 알게 됐을 때쯤 나는 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야 했다. 케이타와 류세이가 집을 바꿔 살기 시작하는 대목이 되자 우리 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딸을 재우고 한 시간 정도 집중해서 영화를 보다가 밥 먹일 때가 됐다는걸 깨달았다.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영화 감상의 리듬이 훼손되는 걸 느끼며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산만한 대신 특별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나는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니까. 영화를 보는 동시에 주인공들과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적극적인 영화 관람의 경험. 요리를 하며 <음식남녀>를 보는 사람은 없지 않나. <소림축구>를 더 재미있게 보겠답시고 실제로 공을 차며 영화를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제이슨 본의 마음을 느끼기 위해 다리를 절며 영화를 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그런데 내 경우엔 영화 속 이야기와 현실이 묘하게 중첩되고 있었다.  

영화 속엔 육아와 관련된 온갖 질문이 네 명의 부모를 통해 쏟아지고, 나는 육아를 하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료타네 집(구조가 우리 집과 상당히 비슷하다)과 비슷한 환경에서,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유다이(케이타의 친부, 류세이를 기른 아버지)가 료타(류세이의 친부, 케이타를 기른 아버지)에게 육아에 대해 이런저런 훈계를 늘어놓을 때 꼭 내게 하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료타는 어렸을 때 자신이 양육된 방식을 케이타에게 그대로 적용해 왔고, 아이를 돌려보낸 뒤에야 상처를 대물림했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내 또래의 남성 관객이 감정이입하기 쉬운 주인공이다. 료타가 케이타에게 사과할 때, 우리에게 끝내 사과하지 않은 우리네 아버지들이 생각나고, 나는 내 자식에게 사과할 수 있을지 계속 자신에게 질문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영화를 촬영하다 오랜만에 집에 들러 옷가지를 챙겼는데, 집을 나서는 그에게 아들이 "또 오세요"라고 인사를 했단다. 그때 감독은 생각했다.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아이와 연결되는 존재지만, 아버지는 시간을 들여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구나.'

언뜻 들으면 모성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 일화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한 나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두 명의 아버지와 두 명의 어머니를 보며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니들은 타고난 모성의 화신이 아니다. 두 어머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슬퍼하고 혼란스러워 한다. 특히 미도리(류세이의 친모, 케이타를 기른 어머니)가 "아들이 바뀐 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난 어머니 자격이 없어"라고 자책하는 대목은 강하게 가슴을 쳤다. 

영화에 등장하는 네 명의 부모 모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이었고, 다만 감독이 료타를 주인공으로 골랐을 뿐이었다. 부모가 된지 겨우 일년 남짓 된 나는 부성과 모성을 다루는 감독의 시선이 얼마나 사려깊은지 감탄하는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덧글

  • 리퍼 2016/07/20 12:52 # 답글

    "케이타와 류세이가 집을 바꿔 살기 시작하는 대목이 되자 우리 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이 대목에서 묘하게 웃겼습니다. 다른 내용이지만, 저도 어릴적에는 저런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었던, 거기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게 만들어서요.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서 저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때즈음 아이가 보게 된다면을 생각하게 되네요. 어른이 되서야 이런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 redz 2016/07/22 01:04 #

    29금 영화입니다 ㅋ
  • 리퍼 2016/07/22 13:21 #

    아뇨 아빠금 영화 ㅋ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