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정도전 감상 취미생활

‘정도전’ 속 인물들은 개경과 동북면 사이의 먼 길을 여의도와 동교동 오가듯 순식간에 왕복한다. 실제로 아주 가끔 열렸다는 도당 회의는 임시국회보다 자주 소집된다. 시공간을 적당히 왜곡한 결과, 고려시대는 호흡 빠른 정치 드라마의 완벽한 무대가 됐다.


후반부 들어 정치 싸움의 성격이 조금 약해졌지만 ‘정도전’의 가장 큰 특징과 재미 모두 정치에서 왔다. 현대 정치에 빗대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많다. 초반의 경복흥은 ‘국회 거수기’, 도당의 최영은 ‘무능한 야당 지도부’처럼 보인다. 이인임과 이성계의 가장 큰 차이는 정치를 대하는 태도다.


이인임의 입에서 무수한 정치 명언이 쏟아지며, ‘정도전’은 역대 어느 사극보다 현재를 강하게 반영했다. 역사를 통해 지금을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 이 점에서 역대 어느 사극도 간 곳 없는 경지에 도달했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러모로 새로운 드라마.


39화 방영 직후 페북에 썼던 감상 >

어제 정도전은 네 남자가 욕망과 우정 사이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갈등하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유려한 비극이었고,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녀 50분짜리 영화라고 생각하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정사와 야사를 적당히 섞어 극화해 보여주는 기존 정통사극에서 탈피, 나름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새로운 정통사극의 상을 제시했다는 작품의 의의도 극대화됐다. 그동안 다소 과했던 이성계의 연기는 부상을 입고 나니 오히려 화살맞은 호랑이를 연상시키는 품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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