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완벽한 엔터테인먼트다. 달리 어떤 말이 필요하겠나. <아이언맨3>가 나왔을 때도 높은 완성도에 감탄했는데, <스타트렉 인투 다크니스>는 그보다 한 수 위다. J.J.에이브람스는 절묘한 플롯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시종 유지하는 동시에 적절한 눈요기를 배합하는 완벽한 대중영화 감각을 갖고 있다. 그동안 발달한 아이맥스와 3D 기술도 적절히 써먹었다. 매 액션 시퀀스마다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들고(체험으로서의 오락영화), 클라이막스에 이르면 관객을 잠깐이나마 눈물 흘리게 만든다.

다만 보편적 한국 관객에게 호소하는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인터넷에서 접한 감상평 가운데 ‘예고편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내용이 자주 보인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이 영화의 SF적 매력과 유쾌한 캐릭터극, 잘 짜인 플롯을 따라가는 쾌감이 액션 시퀀스 몇 개보다 못하단 말인가? 커크랑 스팍이랑 아웅다웅거리는게 안 재밌음?
아래는 오리지널 시리즈 중 <스타트렉: 모션 픽처>와 <스타트렉: 칸의 분노>를 본 사람으로서 찾아낸 몇 가지 인용들. 옛 스타트렉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단 내가 더 재밌게 본 듯.
(5부터는 스포일러)
1. 초반에 등장, 딸을 살리기 위해 존 해리슨의 테러를 돕는 남자는 ‘닥터 후’에서 미키로 출연해 낯익은 배우. 런던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 SF이자 영국 대표 SF인 ‘닥터 후’의 세계가 미국 대표 SF인 스타트렉과 만난 셈이다. 이 캐스팅은 우연일 수도, 일종의 가벼운 유머일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는 셜록홈즈도 출연...)
2. 감정이 앞서는 본즈와 이성이 앞서는 스팍은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관계인데, <비기닝>에 비해 <다크니스>는 이 설정이 더 확실하게 부각된 편이다.
3. 주인공 남자 둘이 붙어다니는 이야기라면, 팬들은 둘 사이의 러브라인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스티븐 모팻이 ‘셜록’으로 셜록홈즈의 세계를 재창조하며 홈즈와 왓슨의 게이삘 유머를 구사한 것처럼, J.J.도 커크와 스팍 사이의 묘한 기류를 부각시키곤 한다. 캐롤 마커스가 처음 등장할 때 둘 사이에 끼어 앉는 장면을 일종의 삼각관계처럼 연출한 것이 한 예.
4. <비기닝>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통신기가 이번엔 자주 등장한다. 오리지널 시리즈부터 등장한 이 통신기는 폴더형 핸드폰의 개념 및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모토로라 스타텍의 디자인은 이에 대한 오마주로 알려져 있다.
5. 스팍이 “칸”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칸의 분노>에서 커크가 똑같이 소리친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미국에선 엄청 자주 패러디되는 명장면이라던데 이번엔 셀프 패러디.
6. <칸의 분노>와 <다크니스>의 결말이 비슷하다. 인물만 바뀌었을 뿐이다. <칸의 분노>에서는 칸을 물리친 뒤 위기에 빠진 엔터프라이즈를 구하기 위해 스팍이 엔진실로 들어가 워프 코어를 맨손으로 고치고 방사능에 의해 죽는다. <다크니스>에서는 커크가 똑같은 행동을 한다. (“기관실로 빨리 와봐라”라는 통신을 받고 커크/스팍이 허겁지겁 달려가 친구의 임종을 지키는 과정도 굉장히 비슷하게 연출되어 있다.)
사실 <다크니스>가 <칸의 분노>를 재해석한 영화라는 점은 초반부터 복선으로 제시된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논리적”이라는 <칸의 분노> 속 스팍의 명대사가 <다크니스> 초반에 나오기 때문이다. <칸의 분노>에서 스팍은 저 대사와 함께 죽었다. 이번엔 커크가 그 자리에서 대신 죽음을 맞는다. 커크는 죽어가며 “너라도 이렇게 했을 거야. 이게 논리적이니까”라고 말한다. <칸의 분노>에서 스팍의 유언이다 다름없던 말을 약간 비튼 것이다.
<칸의 분노>가 벌어진 우주에서 스팍이 엔터프라이즈를 위해 희생했다면, <다크니스>의 평행우주에서는 커크가 희생한다. 둘의 운명은 서로 다른 우주에 걸쳐 거울상처럼 연결되어 있다. 무려 두 개 우주에 걸친 운명적 우정.
두 영화의 결말을 논리적으로 이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비기닝>에서 스팍이 시간여행을 했기 때문에 오리지널 시리즈와 요즘 시리즈는 일종의 평행우주가 됐다. 미래의 스팍은 커크와 스팍 앞에 종종 나타나 둘의 우정이 더 빨리 자리잡게 하는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둘의 인생 경로가 바뀌었고, 결국 칸을 만났을 때 죽는 인물은 스팍 대신 커크가 됐다. 스팍의 시간여행이 아니었다면 커크는 스팍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두 주인공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칸을 이길 수 있었다. 물론 마지막엔 커크도 되살렸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우정인가? J.J.가 평행우주를 다루는 방식은 이토록 순진하고 낙관적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스필버그가 생각난다. <E.T.>를 비롯한 스필버그의 SF 대중영화들이 보여주는 미국 특유의 낙관주의. J.J.의 태도는 왕년의 스필버그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여기에 <다크니스> 초반 시퀀스가 <인디아나 존스>와 굉장히 유사하게 흘러갔다는 점까지 떠올리고 나니, 2010년 이후를 책임질 스필버그의 적자는 J.J.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스필버그의 소수자적 면모를 브라이언 싱어가 계승했다면, 순수한 오락 영화 장인의 면모는 J.J.가 물려받았다는 느낌.

덧글
(ds9 에서 다 께지지만 ;;; )
대중 상업영화는 결국 두 시간 머리 비우고 즐기러 가는 거니까요. 그것마저도 골 아프고 싶지는 않다는 심리랄까, 제가 스타트렉을 보는 이유엔 그런 요소도 분명 있어요.
...레이더스네요. 성궤네요. 미치겠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필버그가 이 장면 봤으면 뭔소리 했을까 되게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