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가 아니었다면 완벽할 수 있었던 굿판 - 추다혜차지스 공연 후기 취미생활


코로나19는 살아있는 인간들뿐 아니라 문화생테계까지 위협한다. 유명 가수는 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하지 못하고(가끔 막무가내로 강행되는 콘서트도 있긴 하다) 인디 밴드는 작은 공연장에 서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어렵게 공연을 열더라도 관객은 절반 이하로 줄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아티스트와 소통하기 힘들다. 추다혜차지스는 이 시국이 가장 난감한 팀 중 하나일 것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소리만큼 중요한 건 가상의 공간이다. 굿에서 쓰이는 무당들의 소리, 즉 무가를 직접 채집한 추다혜는 프로듀싱 능력을 지닌 이시문, 그루브 넘치는 연주 능력의 김재호 김다빈과 함께 신나는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록, 재즈, 블루스 등 온갖 장르를 가리지 않고 섞었지만 스스로 '사이키델릭 샤머닉 훵크'라고 정의한 것처럼 핵심은 훵크다. 굿판은 제의의 공간일 뿐 아니라 일종의 축제의 공간이고, 춤을 추는 스테이지이기도 하다. 음반의 믹싱도 공간감이 매우 강조돼 있는데, 레게 식의 믹싱으로 악기들이 하나씩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주면서 그 사이 청자가 뛰어들 판을 깔아준다.

관객들이 뛰어나와 함께 굿판을 벌이는 건 이들의 음악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가 됐을 터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된 8월 16일은 코로나19 시국의 한가운데였고, 심지어 며칠 전부터 수도권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었다. 생기 스튜디오를 찾은 20명 남짓한 사람들은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앉은 채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고개만 까딱거렸다. 유튜브 라이브를 겸한 공연이라 밴드 바로 앞을 차지한 건 관객이 아닌 카메라 두 대였다. 추다혜는 공연 초반 객석보다 허공을 보며 노래했고, 멘트를 할 때도 어색한 침묵이 가끔 섞였다. "서서 놀면 좋은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앉아서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며 즐겨 주세요." 같은 공간에서 두어달 전에 가졌던 쇼케이스보다도 더 열악한 분위기였다. 탁월한 그루브의 '리추얼 댄스'나, 난장판 파티 음악인 '차지s 차지'를 들을 때도 관객들은 고개를 까닥거리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마스크 때문에 제대로 된 떼창과 환호성도 어려웠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초 두 개가 추다혜 바로 옆에서 타며 굿의 분위기를 만든 가운데, 추다혜는 평안도, 황해도, 제주도의 무가를 묶은 '굿 패키지'로 온라인+오프라인 청중들이 복 받아가길 비는 무대를 선보였다. 추다혜가 직접 채집하기도 한 무가들은 음반에서 그랬던 것처럼 익숙한 동시에 낯선 소리로 다가왔다. 분명 한국어 같은데 고어와 방언, 심지어 현대국어에서 사장된 발음까지 일부 섞여 온전히 알아듣기 힘든 세계. 그 사이에 추다혜차지스는 공연장 이름을 가사에 넣어 부르기도 하고, '굿 패키지' 같은 외래어를 섞어서 듣는 이들에게 재미있는 감각을 선사한다. 추다혜의 보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내게 주제넘은 일이지만, 음반에 비해 내키는대로 내는 소리와 자유롭게 보여주는 춤사위가 음악에 접신한 것처럼 보인다는 건 분명했다.

음악적으로는 충실한 공연이었기 때문에 흥을 가로막는 시대상황이 더 아쉬웠다. 음반에 세션으로 참여했고 프로듀서도 맡은 '제5의 멤버' 강택현이 공연에 처음 동참, 퍼커션을 연주했다. 강택현은 공연 중간부터 추다혜의 무령을 이어받아 악기로 활용했는데, 추다혜가 흔들때와는 또 다른 전문 연주자의 정확한 타이밍 덕분에 더 완성도 높은 악기로서 음악에 녹아들었다. 공연 초반 추다혜를 뺀 멤버들이 약 4분에 걸친 잼을 보여주며 짧은 길이를 보완했다. 종종 튀어나오는 변주, 특히 '사는새'에 참여했던 김오키의 색소폰을 대신한 이시문의 화려한 플레이는 공연에서만 접할 수 있는 차별화된 사운드였다. 프런트우먼인 추다혜를 빼고 다른 멤버들이 연주 실력을 선보이는 동안, 추다혜는 무대를 등지고 무령을 흔들다가 연주가 끝나자 시의적절한 한 마디를 더했다. "다들 오늘 신들렸네요."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타고 있던 초는 45분에 걸친 굿판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다. 촛불이 꺼지지 않는 건 보통 길한 징조지만, 관객이 뛰쳐나와 함께 굿판을 만들었다면 진작에 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아쉬워졌다. 이 뛰어난 공연을 온전히 즐길 수 없게 만드는 시국이.




마라도나 다큐멘터리 <디에고>의 흥미로운 디테일 왼쪽 서랍



1. 빌바오의 도살자
영화가 시작되면, 나폴리에 오기 전 마라도나의 행적이 오프닝 타이틀에 섞여 빠르게 흘러간다. 그중 빌바오와 바르셀로나의 난투극이 비중 있게 묘사돼 있는데, 바르셀로나를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저 빌바오 선수 중 ‘도살자’ 고이코에체아 때문이었다. 마라도나는 유럽 진출 후 두 번째 시즌인 1983/1984시즌 초반 바르셀로나 소속으로서(이때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축구 순수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인물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였다) 좋은 활약 중이었지만, 고이코에체아의 고의성 다분한 태클에 당해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돌아온 마라도나는 코파델레이에서 바르셀로나를 결승에 올려놓았고, 빌바오와 재회하게 된다. 스페인 국왕이 직관하고 국민 절반 가량이 시청하는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 대 고이코에체아의 싸움은 바르셀로나 대 빌바오의 집단 난투극으로 발전했다. 영화에는 이 싸움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2. 푸르보
마라도나에 대한 묘사가 재미있다. 그는 기술, 스피드, 바디 밸런스가 모두 최고였던 선수다. 그런데 이탈리아 언론은 마라도나를 묘사하면서 ‘지능’을 먼저 이야기한다. 상대 수비수를 속일 줄 알았던 것이 마라도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는 말도 한다. 이는 이탈리아 축구가 가장 중시하는 덕목 ‘푸르보(furbo)’와 관련이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상대를 속여 골탕먹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축구장에서는 미세한 변화로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한 전술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드리블 돌파를 할 때면, 브라질 선수는 유연한 드리블로 돌파하고, 영국인들은 힘으로 돌파하며, 둘 다 갖지 못한 이탈리아인들은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며 왼쪽으로 가는 속임수로 돌파한다. 그게 푸르보다. 마라도나의 수많은 능력 중 푸르보를 으뜸으로 치는 인터뷰를 듣고 있으면 이탈리아 국민성의 일면을 알 수 있다. 

3. 카모라
영화 <고모라>가 비교적 최근 카모라(나폴리 마피아)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디에고>는 1980년대 카모라가 나폴리의 지하경제뿐 아니라 나폴리에서 가장 거대한 엔터테인먼트까지 어떻게 장악하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나폴리의 신이 사실은 악마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고, 결국 신은 파멸했다.
축구 스타와 마피아의 결탁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팔레르모의 최근 20년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수였던 파브리치오 미콜리는 지난 2013년 한 순간에 쓰레기로 취급받는 신세가 됐다. 팔레르모는 시칠리아를 연고로 하는 팀이며, 시칠리아는 가장 악명높은 마피아의 근거지다. 미콜리는 마피아와의 친분을 늘 의심받는 선수였는데, 마피아 소탕의 영웅으로 이탈리아에서 절대적 존경을 받는 인물인 지오바니 팔코네(1992년 마피아에 의해 피살)를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가 완전히 마피아의 한 편으로 낙인찍혔다. 미콜리는 결국 팔레르모에서 추방됐다. 마피아와 결탁해 주변 사람들을 협박했다는 게 나중에 알려지면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4. 광기에 어린 울트라스
잉글랜드의 축구장이 두 차례의 관중 참사 이후 완전히 개량되어 훌리건이 발붙일 곳 없는 청결한 곳이 된 반면, 이탈리아의 축구장은 여전히 폭력적이다. 이탈리아 축구장이 얼마나 광기 어린 에너지로 가득찬 곳인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나폴리가 북부 구단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소개하는 초반 몽타주를 보면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욕설, 상대 도시에 대한 격렬한 비방, 무엇보다 이를 외치는 관중들의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 이탈리아 축구장은 유럽 빅 리그 중 유일하게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로 격렬한 곳이다.
나폴리 홈 팬들은 더하다. 2018년 초 내가 나폴리와 라치오의 경기를 보러 갔을 때, 2층의 나폴리 울트라스는 1층에 있는 라치오 울트라스의 머리 위로 홍염을 집어던졌다. 그 사이에는 투척 행위를 막기 위한 그물망이 있었고, 홍염은 라치오 울트라스의 머리 위에서 한참 동안 타며 불꽃을 떨어뜨렸다.

5. 나폴리의 홈 구장 산 파올로
이 영화에 나오는 산 파올로를 눈에 잘 담아뒀다면, 사실상 2019년 현재의 산 파올로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다. 20년 넘게 지났는데 시설에 별다른 개선이 없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다. 영화 도입부, 마라도나가 기자회견실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는 복도를 나도 똑같이 지났다. 그 복도에는 천장이 없다. 보통 축구장에서 선수들이나 기자들이 지나는 복도는 실내에 있는데 산 파올로의 복도는 경기장 밖을 빙 돌아가게 되어 있다. 머리 위에서 관중들이 뭔가 던지면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기장 바깥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오히려 지금은 깨진 병 조각이 굴러다니고, 벽이 온통 그래피티로 가득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흉흉하다고 볼 수 있다.
마라도나는 여전히 그들의 신이다. 나폴리 시내에는 마라도나의 거대한 초상으로 외벽을 채운 건물이 있고, 마라도나의 작은 액자를 파는 기념품 상인들이 있었다. 심지어 나폴리 시내의 미술관은 순수미술 작품과 마라도나의 사진을 함께 전시하는 특별전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동백꽃 필 무렵 단상들 취미생활

1980년대생부터 거의 쓰지 않는 충청도 말 중에서 ‘집이’가 있다. ‘네가’ 또는 ‘당신이’에 해당하는 표현인데, 그리 튀는 어휘가 아니라서 부모 세대가 쓰는 걸 듣고도 내 또래는 눈치 채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도 이문구 선생의 소설을 읽은 뒤 부모님의 통화를 들었을 때 이 표현이 아직도 쓰인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에서는 이 단어가 쓰인다. 이 드라마가 충청도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반영하고 있다는, 일종의 신호가 되는 어휘다. 임상춘 작가가 충청도 출신 젊은 작가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집이’라는 말을 직접 뱉은 적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겪은 충청도를 넘어 충청도의 역사가 품고 있는 정서를 잘 구현해 냈다는 느낌을 준다.

충청도 정서는 곧 지방 소도시 또는 읍내의 정서이기도 하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는 대도시가 충청도에는 드물다. 전라도에 비하면 평야도 적은 편이고, 그 풍경이 주목받은 적이 비교적 드물다. 충청도의 삶은 대도시도 깡촌도 아닌, 소도시나 읍내 중심으로 돌아간다. ‘동백꽃 필 무렵’에 등장한 옹산이 딱 그런 곳이다. 여러모로 이 드라마는 내가 본 충청도 배경 모든 영상물을 통틀어 '진짜 충청도'를 가장 잘 다루고 있다.

지방도시의 텃세는 실제로 존재하는 퍽 불쾌한 우리 사회의 모습 중 하나다. 초반 동백이 텃세에 시달리는 걸 보면서 ‘치명적인 용식의 매력 때문에 인기는 끌겠지만, 로맨틱코미디의 무대라기엔 너무 낡고 구질구질한 세계를 다루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편협하고 옹졸했던 세계는 극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공동체성을 드러낸다. 그 과정은 진부한 ‘시골의 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끼리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는 순간에서 시작됐는데, 6화에서 동백, 자영, 덕순이 서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척 알아보는 대목은 꽤 쾌감이 있었다.

지나치게 모성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점만 빼면 이 드라마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다. 모든 캐릭터에게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는 무한한 사랑을 준다. 규태와 제시카에 이르기까지. 반대로 어머니를 일찍 잃은 동백과 향미는 각각 아들과 남동생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역할을 한다. ‘눈물샘 치트키’인 모성이 너무 자주 다뤄지면서 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반면 남성들은 하나같이 반편이 또는 멍청이(사랑스런 멍청이와 짜증나는 멍청이가 있을 뿐)처럼 묘사되는 세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농촌에서는 밥벌이+가사+육아를 여성이 도맡고 남성은 얹혀 사는 집안이 종종 있다. 그런 면에서는 리얼한 세계일지도.

이 드라마가 가장 탁월하고 감동적인 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넘어 군상극의 성격을 띨 때였다. 12화를 통째로 향미에게 할애한 건 한국 미니시리즈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전개였다. 향미를 누가 죽였는지 추리게임을 하는 것처럼 시작된 에피소드는 점점 향미의 삶을 소개하는 독립 단편처럼 전개된다. 19화 역시 정숙의 과거 사연을 소개하는 진부한 플래시백을 넘어 아예 정숙에게 바치는 스핀오프 단막극 같았다. 주변인물을 보조 서사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각자 삶의 주인공으로 대접하는 태도에서 강력한 휴머니즘이 느껴졌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드라마 중에서도 향미, 정숙처럼 질곡 많은 여성들을 다룰 때 유독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황홀한 우주적 경험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


처음 ‘스타트렉 : 디스커버리’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스타트렉의 공식 신작이긴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의 연속성보다는 차별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미국 TV쇼가 거대해지고 화려해진 시대의 첫 스타트렉이니, 과거 시리즈처럼 느긋하게 진행되긴 힘들다. ‘디스커버리’의 첫 시즌은 유서 깊은 세계관 안에서 벌어지는 우주전쟁 스릴러인 동시에 다양한 모험이 몰아치는 블록버스터 TV쇼에 가깝다. 비록 작품의 배경은 커크와 스팍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오리지널 시리즈(TOS)의 10년 전을 다루고 있지만, 프리퀄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독자적인 이야기였다.

그런데 첫 시즌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감동적인 팬서비스를 통해 TOS와의 접점을 확 넓히더니, 두 번째 시즌을 통해 스타트렉만의 고유한 매력을 되살려 냈다. 시즌2 초반 에피소드들은 대단원을 향해 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매 회마다 완결성이 있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이 황홀하다. 스타트렉의 오랜 윤리적 화두인 프라임 디렉티브(이번 작품에서는 ‘제너럴 오더 원’이라고만 불린다)를 새로운 방식으로 다루기도 하고, 주요 캐릭터인 사루와 그 종족 캘피언이 겪는 사건을 통해 존재론적인 질문도 시도한다. 그럴 때 스타트렉은 스페이스 오페라를 넘어 하드SF에 가까운 사고실험을 하고 현실세계의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루는 특유의 가치를 되찾는다.

시즌 2는 팬서비스와 새 세대의 오락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감각을 유지했다. 주인공 마이클이 스팍의 수양누나라는 점부터 팬서비스로 점철된 작품이 될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결과물이 기대 이상이다. 스팍과 파이크 선장을 비롯해 기존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여럿 재등장하고 재해석된다. 특히 8화는 기가 막히다. 8화는 탈로스 행성을 배경으로 하는데, 탈로스는 1965년 방영된 최초의 스타트렉 파일럿 에피소드의 배경이었다. 배경만 똑같은 게 아니라 내용이 이어진다. 즉 44년 만에 만들어진 최초 파일럿의 속편에 해당한다! 그래서 8화의 ‘지난 이야기’는 앞선 7화의 영상이 아니라, 44년 전 파일럿 에피소드의 영상을 짜집기해서 만들었다(레너드 니모이의 스팍이 등장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시즌2 막바지에 가면, 파이크 선장은 (TOS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이미 알고 있던) 자신의 비극적인 미래를 알게 됐으면서도 임무를 다하는 모습으로 큰 감동을 준다. 시즌 2를 거쳐 점차 성장한 스팍이 막바지에 이르러 사람들이 아는 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역시 짜릿하다. 마이클이 스팍에게 건네는 결정적인 조언이라는 것이 사실상 커크를 찾아 우정을 쌓으라는 내용이라 피식 웃게 되기도 한다.


처음 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던 건 주연으로 더그 존스가 출연하기 때문이었다. 존스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진정한 페르소나이자, 특수분장의 팬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배우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어인, ‘판의 미로’의 판과 손바닥눈알괴물, ‘헬보이’ 시리즈의 에이브사피언+죽음의천사+체임벌린 등등. 190cm 넘는 비쩍 마른 몸과 섬세한 몸놀림으로 델토로의 상상을 손에 잡히는 실체로 만들어 왔다.

새로운 외계인 캐릭터 사루는 더그 존스만을 위한 역할이라 할 만한데, 머리와 손에 라텍스 분장을 한데다 발굽이 있는 종족이라는 걸 표현하기 위한 특수 신발(촬영 내내 발끝으로 선 채 골반을 앞으로 내밀어 균형을 잡는다고 한다)까지 신어서 키가 2m도 넘는다. 그 큰 키로 다른 배우들을 내려다보면서 우아하고 늘 겁먹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리즈를 즐길 가치가 있다. 작품 특성상 디스커버리호의 복도를 걸어가며 대사를 칠 때가 많은데, 존스는 캘피언 특유의 손동작과 걸음걸이도 만들었다. 팔을 등 뒤로 휘적휘적 늘어뜨린 모습은 꼭 유영하는 해파리 같다. 

또 한 가지 놀라웠던 건 액션 장면들인데 넷플릭스 특유의 흥청망청 돈 낭비하는 제작방식 덕분인지 우주함대의 대결이 엄청난 규모로 등장한다. 그 규모와 컴퓨터그래픽의 수준은 TV쇼를 넘어 영화까지 포함해도 역대 모든 스페이스오페라 중 가장 화려하다. 16년 전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우주전을 보고 감탄했던 건 어린애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 그러면서도 너무 현대적인 느낌으로 업데이트에만 골몰한 게 아니라, 페이저가 발사될 때의 시각효과 등 여러 측면에서 1960년대 스타트렉의 설정을 잘 물려받았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도 대체로 즐길 만하고, 양자경 누님이 핵심 캐릭터로 등장해 특유의 다리찢기 발차기를 구사하는 모습 역시 반가운 요소다. 시즌 2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디스커버리호의 새로운 여성 캐릭터들이 힘을 모아 (낡은 남성 캐릭터인) 파이크를 구해주는 액션 시퀀스가 상당히 강조돼 있는데, 이 신도 즐길 만했다. 1960년대부터 다양성에 신경 쓴 시리즈였던 스타트렉은 2019년에 이르러 더 다양한 성적지향과 출신성분을 반영하는 멋진 시리즈가 되었다. 또한 파일럿 에피소드와 TOS 시절 파이크 선장의 부선장(넘버원)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을 뿐 큰 비중을 갖진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등장한 넘버원은 레베카 롬진(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시리즈에서 미스틱)이 맡아 엄청나게 카리스마 있는 여성 지휘관의 모습으로 재창조했다.


엔드게임 후기 - 이 프랜차이즈는 토니 스타크의 것이다 취미생활

‘엔드 게임’을 보고 나서 곧바로 ‘윈터 솔져’를 다시 봤고, 내친 김에 기존 마블 영화들을 정주행하는 중이다. 페이즈 1이 끝나고 나서 ‘아이언맨 3’까지 도착했는데, 이 영화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좋았다. 나머지 영화들은 사실 ‘엔드 게임’에서 어떻게 셀프-오마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봤다면 ‘아이언맨 3’는 오롯이 독립된 재미를 준다.
이 영화가 MCU에서 독특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닌 상태로 활약하는 분량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은 오리지널 어벤져스 중 유일하게 정체성이 두 개인 영웅(캡틴 아메리카나 토르는 그 능력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이다.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 3’에서 수트를 잃은 채 꽤 오랜 시간동안 활약한다. 그런데 그 분량이 오히려 수트를 입고 날뛸 때보다 더 재미있다. 현실감이 부족한 MCU 영화들 사이에서 맨몸의 스타크는 더 고전적인 ‘영화’의 주인공이다. 특히 미주리 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는데 스타크의 ‘수사’, 할리 키너와 나누는 경쾌한 대화가 그렇다. 셰인 블랙 감독은 범죄 영화 ‘키스 키스 뱅뱅’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약간 짓궂은 느낌으로 찍을 줄 안다. 
그 무엇보다 관객을 만족시키는 건 당연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표정이다. 공황장애 증세를 겪는 스타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기제로 일종의 편집증을 택한 인물이다. 고양이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눈동자를 조금씩 떨며, 스타크는 쿨한 척을 한다. 백만장자 플레이보이처럼 굴지만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게 들어있다는 걸 관객 모두 직감할 수 있다.

‘아이언맨’은 두말할 필요 없이 MCU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였다. 솔로 영화의 궤적을 봐도 마찬가지다. 페이즈 1에서 ‘어벤져스’까지 가는 길은 다섯 편의 솔로 영화로 구성돼 있다. 그중 사실상 캐릭터 소개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심지어 그중 하나는 흑역사 취급이 되어버린)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의 오리진 스토리를 제외하면 아이언맨 두 개가 페이즈 1 영화의 축이었다.
첫 번째 단체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페이즈 2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것 역시 ‘아이언맨’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이 영화는 MCU가 개별 영화의 재미와 시리즈의 연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증거가 됐다. 뉴욕 침공 이후 달라진 세계, 이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변화, 페이즈 1과 차별화해야 하는 주인공의 캐릭터성 등 시리즈 안에서 보여줘야 하는 여러 장치를 다 소화하면서도 그 자체로 완성된 재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시리즈가 만들어 준 바탕 위에서 토르, 캡틴 아메리카의 이후 영화들은 서서히 답을 찾아갔다. 그 뒤에 출범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앤트맨 등 후발주자들 역시 아이언맨이 깔아준 판 위에서 놀았다. 그러므로 최애 캐릭터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지만, MCU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솔로 시리즈는 단연 아이언맨 트릴로지다.

스타크가 정신병적인 영웅이라는 건 어벤져스 영화들을 볼만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부 관객들의 오해와 달리 ‘캡은 이타적, 토니는 이기적’이라는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스타크는 호 잉센의 죽음을 목도한 순간부터 늘 이타적이었다. 맨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자신을 내던지는 역할은 늘 아이언맨이 맡곤 했다.
다만 그와 캡틴 아메리카의 차이점은 내면의 파도다. 스타크는 자기 내면의 다양한 문제와 싸우며 남을 돕는다. 그 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여기서 오는 영웅주의적 강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타크의 내면은 늘 거친 파도가 치고 있다. 스타크와 대조를 이루는 캡은 ‘내가 구할 수 있는 만큼을 구할 뿐, 패배하더라도 동료들과 함께 패배하면 된다’며 다소 소박한 자세를 보인다. 그의 마음은 잔잔하다. 스타크가 메시아 컴플렉스에 시달린다면 캡은 소시민적인 영웅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전자가 더 흥미로운 캐릭터다.

**여기부터 스포**

아이언맨 캐릭터가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배우를 봐도 이쪽이 중심이라는 건 마찬가지인데, MCU가 수익을 내며 자리잡은 것 자체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탁월한 스타크 연기에서 비롯됐고, 이후 시리즈의 중심을 잡은 것 역시 그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연기 천재(채플린)이자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앨리 맥빌)으로 인정받았으나 약물 중독으로 경력이 한 번 꺾인 배우다. 아이언맨을 처음 맡았을 때 이미 40대였다. 탁월한 연기력의 중견 배우인 그가 주인공 중 한 명을 맡았다는 건 시리즈 전체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에 비하면 신인급 배우였던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햄스워스, 톰 히들스턴 등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우산 아래서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엔 다들 연기가 늘었지만, 페이즈 1 영화들을 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나머지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큰 차이를 보인다.
루소 형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인피니티 사가의 대단원에서 희생하는 캐릭터가 아이언맨이라는 점과 그때 읊는 유명한 대사는 11년에 걸친 22편의 영화가 ‘아이언맨의 이야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후일담도 마찬가지다. 첫 아이언맨 영화의 감독이었던 존 파브르가 극중 스타크의 딸과 치즈버거 이야기를 나눈다. 치즈버거는 ‘아이언맨’부터 나왔던 스타크의 소울 푸드고, 실제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중독을 끊고 재활한 계기가 되어 준 음식이다. 이 배우의 탁월한 자연인 연기에서 시리즈 전체가 시작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파브르는 말한다. “아이언맨 이후 캐스팅이 잘 된 것은 다 로버트의 감성과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덕분이다.”

‘엔드 게임’은 루소 형제가 기존에 만들었던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 영화 및 ‘인피니티 워’와 큰 차이를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라, 루소가 조스 위든을 흉내내고 있네?’였다.
‘엔드 게임’ 이전까지, 순수한 히어로 팀업 영화는 ‘어벤져스’ 하나뿐이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인피니티 워’ 부록 영상에 나오는 제임스 건의 의견이다.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어벤져스’와 ‘윈터 솔져’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왜냐면 내게 ‘어벤져스’는 궁극의 코믹북 영화니까. ‘어벤져스’를 대할 땐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건 내가 11살 때 어벤져스 만화를 읽으면서 상상한 것과 똑같은데? 만화보다 더 재밌잖아? 이건 궁극의 슈퍼히어로 영화야. 반면 윈터 솔져가 나왔을 때는 ‘이건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건 1970년대 음모론 스릴러의 일종이었다. 장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을 쓴 것이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든 것이다.”
‘어벤져스’에서 위든은 코믹북 작가를 겸하는 창작자답게 만화 그 자체를 스크린으로 옮겨낸 듯한 완벽한 감성을 보여준다. 때로는 코믹북 팬보이들이 사랑하는 장면을 실사로 구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스토리는 핑계인 듯 보이기도 한다. 반면 루소 형제의 영화들은 훌륭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장르물이긴 하지만 ‘덕심’을 자극하는 요소는 거의 없다. 심지어 공산품이라는 느낌도 풍긴다. 위든 대신 루소 형제가 팀업 무비를 맡기 시작한 건 필연적이었다. MCU는 너무 복잡해졌고, 위든의 방식으로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간신히 만들어내는 것이 한계였다. 그 이후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조금 덜 흥분되더라도 침착한 영화를 만드는 루소 형제가 필요했다.
그런데 ‘엔드게임’은 ‘인피니티 워’와 달리 팬서비스와 흥분으로 가득한 영화다. 22편의 인피니티 사가 중 ‘어벤져스’와 더불어 둘 뿐인 ‘순수한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엔드게임’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1장을 통해 타노스를 뎅강 죽여버리며 ‘인피니티 워’를 본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2장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난 11년에 대해 바치는 자기반영적 헌사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자뻑 영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관객들이 가장 흥분할 ‘어벤져스’의 장면들을 중심으로 자기반영적 유머 또는 원작을 소재로 한 유머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어찌나 할 이야기가 많은지, 소울 스톤을 찾으러 간 호크아이와 블랙 위도우의 결투(?)는 감정을 전달할 만한 여유 없이 허겁지겁 전개된다. 루소 형제의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엉성한 리듬이다.
3장 역시 팬들을 위한 시간인 건 마찬가지다. 팬들을 위해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슈퍼히어로 대전 장면이 꼭 필요했다. 이를 위해 레스큐 아머를 입고 온 페퍼 포츠, 날개달린 백마(!)를 타고 온 발키리 등 말도 안 되는 만화적 설정이 화면 전체를 채운다. 나같은 팬들은 스타크의 죽음보다 오히려 군대 집결 장면에 더 전율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잠깐 동안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MCU는 틀림없이 영화 사상 가장 거대한 상업적 프로젝트고, 그 속에 최소한의 영혼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한 프로젝트다. 그 마침표인 ‘엔드 게임’은 보편적인 감동이 아니라 시리즈를 함께 해 온 사람들에게만 느껴지는 특수한 감동을 전하기로 했다. 팬들에게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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