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게임 후기 - 이 프랜차이즈는 토니 스타크의 것이다 취미생활

‘엔드 게임’을 보고 나서 곧바로 ‘윈터 솔져’를 다시 봤고, 내친 김에 기존 마블 영화들을 정주행하는 중이다. 페이즈 1이 끝나고 나서 ‘아이언맨 3’까지 도착했는데, 이 영화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도 더 좋았다. 나머지 영화들은 사실 ‘엔드 게임’에서 어떻게 셀프-오마주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봤다면 ‘아이언맨 3’는 오롯이 독립된 재미를 준다.
이 영화가 MCU에서 독특한 건 슈퍼 히어로가 아닌 상태로 활약하는 분량이 매우 길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은 오리지널 어벤져스 중 유일하게 정체성이 두 개인 영웅(캡틴 아메리카나 토르는 그 능력을 몸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이다.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맨 3’에서 수트를 잃은 채 꽤 오랜 시간동안 활약한다. 그런데 그 분량이 오히려 수트를 입고 날뛸 때보다 더 재미있다. 현실감이 부족한 MCU 영화들 사이에서 맨몸의 스타크는 더 고전적인 ‘영화’의 주인공이다. 특히 미주리 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소소한 재미를 주는데 스타크의 ‘수사’, 할리 키너와 나누는 경쾌한 대화가 그렇다. 셰인 블랙 감독은 범죄 영화 ‘키스 키스 뱅뱅’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약간 짓궂은 느낌으로 찍을 줄 안다. 
그 무엇보다 관객을 만족시키는 건 당연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표정이다. 공황장애 증세를 겪는 스타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기제로 일종의 편집증을 택한 인물이다. 고양이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검은 눈동자를 조금씩 떨며, 스타크는 쿨한 척을 한다. 백만장자 플레이보이처럼 굴지만 그 내면에는 전혀 다른 게 들어있다는 걸 관객 모두 직감할 수 있다.

‘아이언맨’은 두말할 필요 없이 MCU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였다. 솔로 영화의 궤적을 봐도 마찬가지다. 페이즈 1에서 ‘어벤져스’까지 가는 길은 다섯 편의 솔로 영화로 구성돼 있다. 그중 사실상 캐릭터 소개 역할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심지어 그중 하나는 흑역사 취급이 되어버린)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의 오리진 스토리를 제외하면 아이언맨 두 개가 페이즈 1 영화의 축이었다.
첫 번째 단체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페이즈 2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것 역시 ‘아이언맨’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이 영화는 MCU가 개별 영화의 재미와 시리즈의 연결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첫 번째 증거가 됐다. 뉴욕 침공 이후 달라진 세계, 이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변화, 페이즈 1과 차별화해야 하는 주인공의 캐릭터성 등 시리즈 안에서 보여줘야 하는 여러 장치를 다 소화하면서도 그 자체로 완성된 재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시리즈가 만들어 준 바탕 위에서 토르, 캡틴 아메리카의 이후 영화들은 서서히 답을 찾아갔다. 그 뒤에 출범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앤트맨 등 후발주자들 역시 아이언맨이 깔아준 판 위에서 놀았다. 그러므로 최애 캐릭터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지만, MCU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솔로 시리즈는 단연 아이언맨 트릴로지다.

스타크가 정신병적인 영웅이라는 건 어벤져스 영화들을 볼만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부 관객들의 오해와 달리 ‘캡은 이타적, 토니는 이기적’이라는 이분법은 성립하지 않는다. 스타크는 호 잉센의 죽음을 목도한 순간부터 늘 이타적이었다. 맨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면서 자신을 내던지는 역할은 늘 아이언맨이 맡곤 했다.
다만 그와 캡틴 아메리카의 차이점은 내면의 파도다. 스타크는 자기 내면의 다양한 문제와 싸우며 남을 돕는다. 그 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 여기서 오는 영웅주의적 강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스타크의 내면은 늘 거친 파도가 치고 있다. 스타크와 대조를 이루는 캡은 ‘내가 구할 수 있는 만큼을 구할 뿐, 패배하더라도 동료들과 함께 패배하면 된다’며 다소 소박한 자세를 보인다. 그의 마음은 잔잔하다. 스타크가 메시아 컴플렉스에 시달린다면 캡은 소시민적인 영웅으로 보이기도 한다. 당연히 전자가 더 흥미로운 캐릭터다.

**여기부터 스포**

아이언맨 캐릭터가 아니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배우를 봐도 이쪽이 중심이라는 건 마찬가지인데, MCU가 수익을 내며 자리잡은 것 자체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탁월한 스타크 연기에서 비롯됐고, 이후 시리즈의 중심을 잡은 것 역시 그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연기 천재(채플린)이자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앨리 맥빌)으로 인정받았으나 약물 중독으로 경력이 한 번 꺾인 배우다. 아이언맨을 처음 맡았을 때 이미 40대였다. 탁월한 연기력의 중견 배우인 그가 주인공 중 한 명을 맡았다는 건 시리즈 전체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에 비하면 신인급 배우였던 크리스 에반스, 크리스 햄스워스, 톰 히들스턴 등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우산 아래서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엔 다들 연기가 늘었지만, 페이즈 1 영화들을 보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나머지 주연 배우들의 연기 내공이 큰 차이를 보인다.
루소 형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인피니티 사가의 대단원에서 희생하는 캐릭터가 아이언맨이라는 점과 그때 읊는 유명한 대사는 11년에 걸친 22편의 영화가 ‘아이언맨의 이야기’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후일담도 마찬가지다. 첫 아이언맨 영화의 감독이었던 존 파브르가 극중 스타크의 딸과 치즈버거 이야기를 나눈다. 치즈버거는 ‘아이언맨’부터 나왔던 스타크의 소울 푸드고, 실제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중독을 끊고 재활한 계기가 되어 준 음식이다. 이 배우의 탁월한 자연인 연기에서 시리즈 전체가 시작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파브르는 말한다. “아이언맨 이후 캐스팅이 잘 된 것은 다 로버트의 감성과 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덕분이다.”

‘엔드 게임’은 루소 형제가 기존에 만들었던 두 편의 캡틴 아메리카 영화 및 ‘인피니티 워’와 큰 차이를 보인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라, 루소가 조스 위든을 흉내내고 있네?’였다.
‘엔드 게임’ 이전까지, 순수한 히어로 팀업 영화는 ‘어벤져스’ 하나뿐이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인피니티 워’ 부록 영상에 나오는 제임스 건의 의견이다.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 ‘어벤져스’와 ‘윈터 솔져’ 사이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왜냐면 내게 ‘어벤져스’는 궁극의 코믹북 영화니까. ‘어벤져스’를 대할 땐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건 내가 11살 때 어벤져스 만화를 읽으면서 상상한 것과 똑같은데? 만화보다 더 재밌잖아? 이건 궁극의 슈퍼히어로 영화야. 반면 윈터 솔져가 나왔을 때는 ‘이건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건 1970년대 음모론 스릴러의 일종이었다. 장르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방법론을 쓴 것이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든 것이다.”
‘어벤져스’에서 위든은 코믹북 작가를 겸하는 창작자답게 만화 그 자체를 스크린으로 옮겨낸 듯한 완벽한 감성을 보여준다. 때로는 코믹북 팬보이들이 사랑하는 장면을 실사로 구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스토리는 핑계인 듯 보이기도 한다. 반면 루소 형제의 영화들은 훌륭한 리듬으로 전개되는 장르물이긴 하지만 ‘덕심’을 자극하는 요소는 거의 없다. 심지어 공산품이라는 느낌도 풍긴다. 위든 대신 루소 형제가 팀업 무비를 맡기 시작한 건 필연적이었다. MCU는 너무 복잡해졌고, 위든의 방식으로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간신히 만들어내는 것이 한계였다. 그 이후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조금 덜 흥분되더라도 침착한 영화를 만드는 루소 형제가 필요했다.
그런데 ‘엔드게임’은 ‘인피니티 워’와 달리 팬서비스와 흥분으로 가득한 영화다. 22편의 인피니티 사가 중 ‘어벤져스’와 더불어 둘 뿐인 ‘순수한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엔드게임’은 총 3장으로 구성돼 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1장을 통해 타노스를 뎅강 죽여버리며 ‘인피니티 워’를 본 관객들의 기대를 배반한다. 2장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난 11년에 대해 바치는 자기반영적 헌사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자뻑 영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관객들이 가장 흥분할 ‘어벤져스’의 장면들을 중심으로 자기반영적 유머 또는 원작을 소재로 한 유머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어찌나 할 이야기가 많은지, 소울 스톤을 찾으러 간 호크아이와 블랙 위도우의 결투(?)는 감정을 전달할 만한 여유 없이 허겁지겁 전개된다. 루소 형제의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엉성한 리듬이다.
3장 역시 팬들을 위한 시간인 건 마찬가지다. 팬들을 위해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슈퍼히어로 대전 장면이 꼭 필요했다. 이를 위해 레스큐 아머를 입고 온 페퍼 포츠, 날개달린 백마(!)를 타고 온 발키리 등 말도 안 되는 만화적 설정이 화면 전체를 채운다. 나같은 팬들은 스타크의 죽음보다 오히려 군대 집결 장면에 더 전율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잠깐 동안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MCU는 틀림없이 영화 사상 가장 거대한 상업적 프로젝트고, 그 속에 최소한의 영혼을 담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특별한 프로젝트다. 그 마침표인 ‘엔드 게임’은 보편적인 감동이 아니라 시리즈를 함께 해 온 사람들에게만 느껴지는 특수한 감동을 전하기로 했다. 팬들에게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스포 없는 캡틴마블 후기 취미생활




- 원작의 캐릭터 탄생 과정을 여러모로 각색했는데,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려는 노력이 보인다. 캡틴마블에게 능력을 주는 존재가 원작의 남성(원조 캡틴마블)에서 크리 문명 자체로 바뀌었다. 원작의 주요 남성 캐릭터 중 하나를 주인공이 존경하는 여성 캐릭터로 바꿨다. 나중에는 약간의 반전을 통해 캡틴마블의 능력은 ‘남이 부여한 힘’이 아니라 ‘스스로 자각한 힘’이라는 걸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캐릭터의 주체성을 높였다.

- 원작의 캡틴마블이 그다지 막강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마블의 히든카드’ ‘타노스를 무찌를 유일한 희망’이라는 수식어가 의아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 의문이 풀린다. 의문이 풀리는 순간(즉 파워업의 순간) 쾌감도 있다. 

- 영화를 보고나면 왜 페미니즘 대전(?)이 벌어졌는지 의아할 정도로 모난 곳 없고 무난한 대중영화다. 페미니즘 서사가 내재되어 있긴 하지만 ‘블랙 팬서’처럼 주제의식을 전면으로 드러내는 수준은 아니다.
능력을 자각하는 순간, 성별 때문에 억압받던 캡틴마블의 어린 시절 모습들이 몽타주로 제시되는데 그때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마치 그들이 각각 다른 여성으로서 함께 일어나 연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돼 있다. 이 대목이 약간 감동적이다. 그밖에도 페미니즘의 성격은 이 영화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장치로서 잘 쓰이고 있다. 영화의 오락성을 해치지 않는다.

- 영화가 느리다. 연출도 편집도 10년 전 정석적인 리듬이지, 요즘 블록버스터의 리듬이 아니다. 훨씬 빠른 편집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관객들에겐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풍 영화를 만드느라 그 시절 영화 문법까지 다시 가져왔나? 내겐 전혀 거슬리지 않았지만 젊은 관객들이 ‘지루했다’는 후기를 남기는 걸 보며 대중영화가 엄청 급해졌구나 싶음.

- 원작의 크리-스크럴 전쟁을 소재로 가져와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은 신선했다. 마블 영화는 원작을 잘 아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려는 경향이 늘 있는데(‘아이언맨3’에서 만다린의 정체 등)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스크럴이 지구를 얼마나 괴롭혀 왔는지 대충 아는 관객들에겐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외계인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라는 단순한 주제에 머무르지 않고, 외계의 여러 세력이 각각 다른 입장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주인공이 그중 어느 쪽을 지지할지 결정해야 하는 영화가 되었다. 즉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되면서, 조금은 깊이가 생겼다.

- 두 눈이 모두 남아있는 닉 퓨리, 여전히 뻣뻣한 연기를 하는 콜슨, 무한한 힘의 원천이라는 ‘코어’의 정체 등 MCU 팬들에게 더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 다만 어벤저스라는 팀명의 유래가 밝혀지는 장면 등 무리하게 짜맞춘 팬서비스라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다.
약간의 설정충돌이 생긴 듯 싶지만 그 정도는 신경쓰지 않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드래곤볼’이 단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재미만 있다면 설정 따위 사소하게 뒤집어도 상관 없는 것이다.

- 솔트-앤-페파와 너바나의 음악, CD롬 읽는 소리 등 추억을 건드리는 복고 요소가 많다. 삽입곡은 워낙 명곡들이라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지만, 복고 코드 자체는 너무 뻔하게 활용해서 재미가 없었다. '원더우먼 1984'는 이렇지 않기를.

- 캐스팅 논란이 국내에만 있었는지 미국에서도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브리 라슨이 못생겼다는 어이없는 소리와 끝없는 외모지상주의는 일단 넘어가고, 원작과 느낌이 맞는 캐스팅인지만 생각해보자면, 나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만화 캐릭터의 외모를 브리 라슨이 못 따라간다는 건 코웃음이 나는 소리다. 만화 캐릭터의 외모를 어떻게 따라가나? 그럴거면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을 배우로 쓰던지 '만찢녀'로 유명한 코스어를 쓰지. 왜 영화배우를 쓰나?
캡틴마블은 원작 속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노출이 없는 복장을 하고, 긴 생머리를 모히칸 헤어로 바꾸는 등 중성적인 스타일로 변해 온 캐릭터다. 활동명도 미즈마블에서 캡틴마블로 바꿨다.
일부 남성팬들이 아쉬워하는 에밀리 블런트 같은 경우, ‘메리포핀스 리턴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날카롭고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느낌이 그 배우의 개성인데, 캡틴마블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완전히 안 어울린다.

아쿠아맨과 마우이, 헐리우드가 찾은 새로운 마초들 취미생활

[아쿠아맨]에서 가장 절묘한 캐스팅은 앰버 허드나 니콜 키드먼이 아닌 제이슨 모모아다. 이건 내 의견이라기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가깝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주인공들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 원작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외모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하면 영화판 아서 커리와 원작의 아쿠아맨은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다르다.

그러나 이만큼 절묘한 캐스팅도 없을 것이다. 원작 그대로 금발 백인 미남이 물고기 비늘옷을 입고 아쿠아맨을 자처했다면 관객들의 눈에 키치로 보였을 것이 뻔하다. 이미 영상화된 적이 많아 유치하다는 이미지를 깬 슈퍼맨이나 배트맨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아쿠아맨이 코스프레가 아닌 영화의상으로 보일 수 있게 한 건 대부분 모모아의 타고난 매력이다. 모모아는 머리색, 머리모양, 피부색, 눈 색 등등, 한 마디로 말해서 인종 설정이 원작의 아쿠아맨과 딴판이다. 모모아는 폴리네시아의 일부인 하와이 원주민 혈통이다. 헐리우드가 동원할 수 있는 미국의 인종 중 바다의 주인에 가장 근접한 혈통이라면 바로 해양민족인 폴리네시아인이다. 어쩌면 아쿠아맨은 만화에 등장한지 약 8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장 어울리는 외모를 찾은 것이다.

모모아의 한쪽 팔뚝에는 연속 삼각형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 문신은 모모아 집안의 영적 상징(아우마쿠아)인 상어를 형상화한 것이다. 영화는 이 문신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적극 활용했다. 더 많은 문신 분장으로 아서 커리의 몸을 뒤덮어 폴리네시아인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아버지는 아서에게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더 많은 문신을 하라고 성화셨을 거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모아는 영화 홍보를 위해 여러 번 하카를 췄다. 마오리족의 전쟁춤으로 유명한 하카 역시 폴리네시아인들의 전통 중 하나다. 모모아와 함께 하카를 추며 돌아다니는 멤버 가운데는 근육질의 남성뿐 아니라 소녀들도 포함돼 달라진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 안팎에서, 모모아와 아쿠아맨은 태평양을 누비고 다닌 해양민족의 후손이다.

모모아의 외모를 영화에서 활용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영화 속 아틀란티스는 백인들만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묘사돼 있으며, 모모아의 까무잡잡한 피부는 잡종의 상징(원작과는 다르다. 원작 중에서는 커리의 금발이 오히려 배척당하는 설정도 있다)이다. 그러나 아틀란티스 기득권층의 편견과 달리, 커리가 ‘잡종’이라는 건 육지와 바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상징으로 발전해간다. 소수민족 출신 배우가 헐리우드의 비주류에서 주류로 올라섰다는 영화 밖 상황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모모아에 앞서 드웨인 존슨이 있다. 존슨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근육질 액션 주인공으로 맹활약 중이다. 아쿠아맨에 앞서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더 적극적으로 폴리네시아 문화에 기반을 둔 작품인데, 존슨은 창세설화의 주인공인 마우이의 목소리를 맡았다. 존슨도 모모아처럼 영화 홍보를 위해 하카를 췄다. 하와이(마우이는 하와이의 섬 중 하나의 이름이기도 하다)에서였다.

존슨과 모모아는 헐리우드가 찾은 새로운 마초성이다. 30여 년 전에는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처럼 보디빌딩으로 단련된 백인 남성이 남성미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폴리네시아계 남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폴리네시아계는 선천적으로 몸이 두껍고 힘이 좋은 걸로 유명한 민족이다. 이들의 보여주는 마초성은 백인 근육남들보다 더 자연스럽고, 타고난 마초성을 잘 보여준다. 똥폼을 잡기보다 씩 미소지으며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쿨가이들의 이미지다. 이들은 문화적 다양성이 상업적으로 왜 쓸모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토티-이탈리아 여행] 로마로 가는 길에 만난 토티의 동료 왼쪽 서랍


내 책 <프란체스코 토티 : 로마인 이야기>(이하 <토티>)의 집필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올해 2월, 내게 유럽 출장 기회가 생겼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거치는 출장 뒤에 휴가를 며칠 붙여 <토티>를 쓰기 위한 답사를 하기로 했다. 회사의 양해를 받은 뒤 허겁지겁 답사 준비를 시작했다. 일찌감치 인터뷰 신청을 했다면 토티 본인, 혹은 토티를 잘 아는 로마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시간이 없었다. 로마 구단과 접촉하는 건 취재 신청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취재 신청 과정을 돌이켜보면 거의 코미디와 같았다. 욕심이 생긴 나는 금요일 피오렌티나(vs 유벤투스), 토요일 나폴리(vs 라치오), 일요일 로마(vs 베네벤토) 홈 경기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중남부 경기 일정을 발견했다. 경기 상대도 대부분 화려했다. 급히 세 구단에 취재신청을 넣었다. 아무리 세리에A 입장권 구매가 쉽다지만 미리 기자석을 예약해놓고 간다면 현지에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경기를 볼 때마다 기사만 하나씩 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단의 미디어 안내 문구에 따라 정해진 날짜, 정해진 서식에 맞춰 신청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취재가 거절당했을 경우 거절 통보를 해 준다고 명시돼 있었는데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심지어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피오렌티나만 뒤늦게 취재 허락을(격식에 맞는 이메일로) 해 줬을 뿐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이메일 계정을 바꿔가며 나폴리와 로마 측에 추가 메일을 보냈고, 메일을 확인해 달라는 메일을 또 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폴리와 로마 모두 매우 뒤늦게, 경기 전날 저녁에 취재를 허가한다는 통보를 해 줬다. 특히 나폴리의 답신은 가관이었다. 나는 격식에 맞는 영어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나폴리의 답신은 딱 두 단어 “OK, accreditation!” 뿐이었다. 정말로 느낌표까지 찍혀서 왔다. 나폴리 담당 직원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영어로 신청하시면 경기 X일 전까지 답신해 드립니다’라고 써 있던 미디어 안내 문구는 개뻥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들 대충 신청 메일을 보낸 뒤 대충 들어가서 대충 취재하는 시스템인 것으로 짐작됐다. K리그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짧은 이탈리아 여행 내내 느낀 '이래서 반도 국민성 비슷하다고 하는구나'의 첫 순간이었다.

여전히 취재 승인이 났는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파리를 떠나 로마로 향했다. 그날 파리에는 눈이 많이 왔다. 폭설이라고 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지만 뜻밖에도 파리의 대중 교통은 거의 마비 상태였다. 충분히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마비된 전철(공항철도?)을 골라내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느리게 가는 전철에서 시간을 더 허비했다. 그래도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바쳤다. 

마침내 게이트 앞에 도착해 들어갈 시간이 되었는데, 이번엔 활주로 사정 때문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유럽인들은 ‘원래 포르투갈 저가 항공을 타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잡지를 펼쳐들었지만 나는 어느 게이트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괴상한 시스템에 어안이 벙벙했다. 출장 인생 9년차에 이만큼 당황스런 연착은 처음이었다. 나만큼 당황한 한국인을 한 명 만나 서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한 끝에 항공사 사이트 구석의 어느 메뉴로 들어가면 연착된 항공기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걸 찾아냈다.

문제는 해결했지만, 이탈리아에서 겨우 4박 5일만 머무를 수 있는 나로선 첫날 대부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이 크나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비극은 약간의 행운으로 바뀌었다. 내가 갑자기 생긴 일행과 모처럼 한국어를 쓰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아까부터 묘하게 눈에 띈 남자가 근처에서 두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뿌리는 검지만 나머지는 금발인 단발머리를 귀 뒤로 대충 넘겼고, 느끼해지기 쉬운 벨벳 자켓을 몸에 딱 맞게 입은 남자였다. 그는 페데리코 발차레티였다. 발차레티는 내가 직접 취재한 유로 2012에서 이탈리아의 주전 풀백이었고, 무엇보다 토티의 전 동료이자 현재 직장 동료(로마 디렉터)였다. 발차레티의 아내가 파리에서 일하는 발레리나라는 건 알고 있었다. 파리의 집에서 로마의 집으로 건너가는 길에 나와 마찬가지로 발이 묶인 것이다.

나는 발차레티에게 말을 붙이기로 했다. 기자로서, 축구인에게 팬심을 표현하는 건 금기시되는 행위다. 그러나 그 자리의 나는 취재가 아닌 휴가 중이었고, 파리에서 발차레티를 만나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깎여나갈 위신도 없었다. 발차레티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그는 씩 웃으며 반겨 줬다.


그런데 기자가 아니라 팬의 마음으로 다가가고 나니 행동거지도 팬처럼 되어버렸다. 발차레티는 영어도 그럭저럭 하는 편이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이것저것 캐물으며 책에 쓸 멘트 몇 마디라도 받아냈을 텐데, 그날은 어버버버 거리며 겨우 1분 정도 대화한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발차레티가 다시 아이들과 놀아줘야 할 시점이었다. 결국 내 손에 남은 건 자신의 모습이 엉망일 뿐 아니라, 발차레티의 고상한 외모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셀카 한 장이었다.

괜찮았다. 토티의 발자취를 느끼러 가는 길에 토티의 동료이자 친구인 사내를 만났다는 건 묘한 운명처럼 느껴졌다. 발차레티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향했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알프스와 지중해는 벌써 환상적이었다. 로마에서 한 일이라고는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것이 고작이었지만, 대충 아무데나 들어간 숙소 근처(테르미니 역 근처)의 작은 식당은 ‘짜고 맛있는 파스타’ ‘한국에서라면 이렇게 단촐한 재료만 넣고 팔 리 없지만 막상 먹어보면 버섯 향이 만족스런 피자’ ‘커피를 달라고 하면 당연히 나오는 에스프레소’ ‘여유롭게 가곡을 부르며 서빙하는 뚱뚱한 대머리 직원’ 등 이탈리아 식당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를 모두 충족시켰다. 그렇게 첫 날이 흘러갔다. 이튿날은 로마 관광을 약간, 토티에 대한 답사를 약간 하기로 대충 계획을 짜고 잠이 들었다.


Janelle Monáe의 'Dirty Computer'에 영향을 미친 것들 왼쪽 서랍


'리드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자넬 모네이(Janelle Monáe)가 4년 7개월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모네이는 몇 장의 싱글을 제외하면 사회 운동과 영화 출연 등, 음악 외적인 작업에 더 집중해왔다. 새 앨범 [Dirty Computer]는 앞선 앨범 3부작과 비슷한 메시지를 공유하면서도 음악적으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Dirty Computer]는 모네이의 점진적인 변화가 담긴 앨범이다. 그동안 모네이가 겪은 일들과 그 사건들이 새 앨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리했다. 우리 시대의 프린스(Prince), 모네이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키워드들이다.

Yoga

모네이는 2015년에 개인 작업보다 본인이 설립한 독립 레이블 ‘원더랜드 레코드(Wondaland Records)’를 안착시키는 데 더 비중을 두는 듯했다.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 지데나(Jidenna), 로만 지안아서(Roman GianArthur) 등이 참여한 단체 앨범 [Wondaland Presents : The Eephus]가 대표적이다.

모네이는 이 앨범에서 가장 잘 알려진 노래 “Yoga"를 지데나와 함께 작업했다. 사운드만 들으면 평범하고 개성 없는 노래처럼 느껴지지만, 가사에는 모네이 특유의 당당한 태도가 잘 드러나 있다. ‘나를 위한 은밀한 댄서는 바로 나니까’, ‘내 가슴에서 손 떼’ 등의 가사는 [Electric Lady] 수록곡 “Q.U.E.E.N”에서 ‘내가 거울을 보며 혼자 트워크를 하는 게 이상해?’라고 질문했던 가사에 대한 대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여자들끼리 춤을 추며 요가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배우 테사 톰슨(Tessa Lynne Thompson)이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톰슨은 [Dirty Computer]와 함께 공개된 동명의 46분짜리 영상에서 모네이와 함께 주인공을 맡았다. 이 영상이 각 수록곡의 뮤직비디오 역할도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당수의 뮤직비디오에 톰슨이 출연한다.

많은 사람들이 톰슨과 모네이가 이번에 처음 힘을 합친 줄 알지만, 사실 이들의 호흡은 “Yoga”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Dirty Computer] 영상에 모네이와 톰슨의 섹스를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고, 둘이 평소에도 붙어 다니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되자 ‘사귀는 것 아니냐’는 가십이 나왔다. 모네이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모네이는 이번 앨범에서 범성애자(pansexual)로서의 정체성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Prince의 죽음

2016년은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신비로운 슈퍼스타였던 프린스(Prince)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세상을 떠난 해다. 둘 다 모네이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뮤지션들이다. 특히, 2016년 4월 사망한 프린스는 모네이와 인연이 깊다. [Electric Lady] 수록곡인 “Givin Em What They Love”에 프린스가 참여했다. 프린스는 이후에도 모네이와 교류를 이어가는 중이었고, [Dirty Computer]의 작업을 도왔다.

모네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지만, 그가 그립다. 그의 영혼은 날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모네이는 범성애적이면서 섹시한 이미지,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세계, SF 콘셉트 등 여러 면에서 프린스를 계승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모네이의 음악은 프린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등등, 다양한 선배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은 혼합물이었다. [Dirty Computer]는 프린스에게서 받은 영향이 압도적인 비중으로 드러난 앨범이다. 이 앨범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TR-808 드럼 사운드를 입은 프린스 음악의 재창조’라고 할만하다.

소울과 재즈 같은 장르의 색채는 옅어진 대신 프린스에게서 물려받은 펑크(Funk), 때론 록에 가까운 사운드가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프린스를 연상시키는 수록곡 “Make Me Feel”은 실제로 프린스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의 DJ였던 렌카 패리스(Lenka Paris)에 따르면, 프린스가 평소 연주했던 신시사이저 라인이 이 곡에 쓰인 걸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Fem The Future’

모네이는 일종의 사회 운동가로도 활동해왔다. 흑인 인권 시위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 “Hell You Talmbout”을 원더랜드 레코드 아티스트들과 함께 만들어 무료 배포한 것이 한 예다. 할리우드의 화두인 페미니즘 운동에서도 모네이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특히, 2016년 9월부터 페미니즘 운동 ‘Fem The Future’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모네이는 이 운동의 이름으로 여러 아티스트를 초대하여 연대하는 행사를 여러 번 가졌다.

흑인 인권운동과 여성운동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모네이의 행보는 음악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모네이의 가사에서 페미니즘은 간접적으로만 반영돼 있었다. 반면, [Dirty Computer]에는 ‘fem the future’라는 가사가 직접 등장할 뿐만 아니라 ‘hit the mute button, let the vagina have a monologue(음 소거 버튼을 누르고 질이 독백을 하게 해)’를 비롯해 페미니즘 선언문에 가까운 라인이 가득하다.

싱글 “PYNK”는 ‘여성의 몸 안에 있는 분홍색 신체부위’, 즉 여성 성기에 대한 노래인데, 이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옷을 입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모네이의 성기 모양 바지 사이에서 톰슨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은 행위예술에 가까워 보인다.

가사가 너무 직접적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게 되면 예술로서의 가치는 떨어질 수도 있다. 모네이는 가사를 노골적으로 쓴 대신, 음악의 형식과 감정을 섬세하게 조절함으로써 함정을 피해간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모네이 특유의 가창력 대신 내밀한 화법의 비중이 늘었다. 반대로 랩의 비중을 늘려 직설화법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문라이트’와 ‘히든 피겨스’

모네이는 2016년 말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배우로 본격 데뷔했다. 둘 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작품들이다. 동성애자 흑인의 성장기를 다룬 [문라이트, Moonlight], 나사에서 일한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 모두 모네이의 음악세계와 일맥상통한다. 한 아티스트의 음악과 배우 활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드문 사례다.

특히, [히든 피겨스]에서 모네이가 맡은 과학자 메리 잭슨은 모네이의 캐릭터 그 자체다. 모네이는 “Django Jane”의 가사 'We ain't hidden no more, moonlit nigga, lit nigga‘를 통해 두 영화를 활용한 펀치라인을 썼다.

한편, [히든 피겨스]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함께했던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는 [Dirty Computer]의 수록곡 “I Got The Juice”의 프로듀싱과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모네이는 퍼렐이 주도한 [히든 피겨스] 사운드트랙에서 유일하게 두 트랙에 참여한 보컬이었다.

필립 K. 딕의 ‘일렉트릭 드림스’

[일렉트릭 드림스, Electric Dreams]는 2017년 5월에 발영된 영국 드라마다. SF 소설의 거장 필립 K. 딕의 단편 10개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10편짜리 옴니버스 작품이다. 모네이는 여덟 번째로 방영된 ‘오토팩(Autofac)’에 안드로이드 역할로 출연했다. 모네이가 음악 속에서 줄곧 연기해 온 캐릭터(신디 메이웨더)와 비슷하다.

‘블랙 팬서’

2018년 1월 개봉한 [블랙 팬서, Black Panther]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첫 흑인 주인공 영화이자 역사상 최초로 흑인들이 모든 주역을 맡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다. 많은 흑인 예술가들이 이 영화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블랙 팬서]는 아프로 퓨처리즘을 최초로 영상화한 영화라는 점에서 모네이의 음악과 연결 지어 생각할만하다.

아프로 퓨처리즘은 흑인 인권 문제와 SF를 결합한 장르다. 모네이는 음악으로 아프로 퓨처리즘을 계승해온 대표적인 뮤지션이다. 영화 속에 묘사되는 와칸다는 아프리카 특유의 색감과 첨단 과학기술을 조화시킨 시각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모네이에게 [블랙 팬서]는 자기 음악 속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모네이는 이 영화와 원작 만화에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에서 직접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지구상 최강의 금속으로 묘사되는 비브라늄은 “Crazy, Classic, Life”에 영감을 제공했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와칸다 최강 부대 도라 밀라제는 “Django Jane”의 콘셉트에 영향을 줬다.

모네이는 영화에 등장한 여성 배우들과도 친분을 맺고 있다. 올해 모네이가 주최한 ‘Fem The Future’ 행사에는 [블랙 팬서]에 출연한 루피타 뇽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까지 연속으로 출연한 다나이 구리라가 모두 참가했다. 모네이의 친구이자 MCU에서 발키리를 연기하는 톰슨, 넷플릭스(Netflix)가 제작하는 MCU 드라마에 출연 중인 로자리오 도슨 등, 마블 세계관에 있는 흑인 여성 배우 대부분이 모네이와 인연을 맺었다. 루피타 뇽오는 최근 트위터에 모네이의 노래 “Make Me Feel”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모네이는 앨범 발매 후 가진 인터뷰에서 [블랙 팬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다음 영화에 출연하고 싶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물론 영광이지. 라이언 쿠글러 감독, 전화 주세요.” 만약 [블랙 팬서]의 세계가 더 확장된다면, 마블 영화에서 연기하는 모네이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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